출처 : https://getpocket.com/a/read/875590212

사기를 읽어야 하는 14가지 이유

첫째, 그 무엇보다 재미있다. 특히 『사기』 130권 가운데 분량이 무려 반이 넘는 열전 70권의 재미가 특별하다.

둘째, 감동이 있다.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에 시달리며 가정을 고독하게 책임을 지고 있는 중년의 가장들에게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킬러들의 행적을 모은 「자객열전」(열전 제26)에서 예양이란 자객이 이런 말을 남겼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 주는 사내를 위해서 꾸민다(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의리를 강조한 말이다. 또 위(衛)나라 사람 형가(荊軻)라는 자객이 있다. 연(燕)나라 태자 단(丹)과 함께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은 모티프와 주요 줄거리를 「자객열전」의 형가 이야기에서 빌려왔다.

“바람소리 소슬하고 역수의 강물 차갑구나, 장사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형가가 역수 가에 이르러 이렇게 노래를 했다. 그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떠난 자객이었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줄 빤히 알고 가는 그 뒷모습이 얼마나 쓸쓸한가? 이렇게 『사기』에는 의로움에 목숨을 거는 사나이들과 진한 감동이 있다.

셋째, 세상사를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나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될 때를 알게 해주는 ‘진퇴의 지혜’가 있다.

인생 최고 절정기에 은퇴하여 명예롭게 삶을 마무리한 범려와 장량의 스토리는 인생을 살아 갈 때 늘 놓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돕는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 또한 『사기』의 매력이다.

넷째,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아주 통렬한 비판이 있다.

『사기』의 생명력이다. 권력자에 대해 칭송이나 찬양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이나 부패에 대해서 아주 지독하면서도 강렬한 저항과 울분을 터뜨리는 이가 바로 ‘태사공(太史公) 사마천’ 이다. 정의감이 넘쳐나는 인물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도 훌륭한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다.

다섯째, 능력과 재능은 있지만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나는 이거 진짜 잘 하는데 왜 세상이 나를 못 알아봐 주는 거야’하는 서운한 감정을 많이 지니고 살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과 동정 의식을 강하게 느낀 이가 바로 인간 사마천이었다. 그는 약자 편에 설 줄 알았던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여섯째, 복수관이 들어 있다.

사마천은 누가 부당하게 핍박을 받거나 희생을 당한 뒤 발분하여 통쾌하게 복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크게 평가했다. 「자객열전」에서도 자객들의 이름과 의로움이 후세에 전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칭찬했다. 중국 속담에 ‘은혜와 원수는 대를 물려서 갚는다.’고 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원래 은원관(恩怨觀)이 매우 강하다. 그런 은원관의 뿌리를 『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곱째, 인물들이 너무나 다양하다.

『사기』를 넘기다 보면 별의 별 사람들이 등장한다. 온갖 군상들의 만화경이다. 온갖 부류 사람들이 펼치는 생생한 언행들이 대하 드라마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독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입을 시켜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가 있다.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고급 뷔페와 같다고나 할까. 국내 『사기』 전문가인 한양대 이인호 교수는 『사기』를 ‘맥가이버 칼’ 같다고 했다.

여덟째, 미신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또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못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아홉째, 실용적이면서도 윤리적인 경제관이 드러나 있다.

「화식(貨殖) 열전」(열전 69권)의 예가 잘 말해주듯, 사마천의 경제관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열심히 돈 벌어서 부자 되세요’다. 사마천은 제(齊)나라의 명재상이던 관자(管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노닐 수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나온다.’는 속담이 있듯, ‘창고가 차야 예절을 차리고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고’, 비로소 인의를 행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야, 친구를 만나더라도 체면치레를 할 수 있지 않던가.

하지만 사마천은 직업에 귀천이 따로 없다면서도,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하지 않는다.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 되라고 하지만 부조리하고, 불법적으로 돈을 벌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처럼’ 돈만 버는 사람을 아주 강하게 비판한다.

열째, 세태 풍자가 있다.

‘천금을 가진 자식은 길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 라는 말이 「화식열전」에 나온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소위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잘못을 범하고도 어떻게 빠져나오는가를 보면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마천은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꼬집었다.

열한 번째, 『사기』는 독창적인 기전체의 효시다.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으로 구성된 다섯 체제는 사마천 이전에 그 누구도 시도해 본적이 없는 역사책의 편집 체제다. 사마천의 천재성과 창의력이 번득이는 체제다.

열두 번째 『사기』를 읽지 않으면 중국을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기』는 학문적 차원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중국 입문서다. 최근에 불거진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 분쟁의 근원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사기』다.

열세 번째, 『사기』가 없었다면 중국의 학술사와 중국 역사에 큰 공백이 생길 뻔 했다.

잘 아시다시피 진시황은 분서갱유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법가와 농가 외의 책은 불태워버리고, 특히 유학자들을 구덩이에 묻어서 생매장해버렸다. 고대사 최대의 사상 탄압이었다. 때문에 수많은 책들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사마천의『사기』가 나중에 쓰여진 덕분에 유실되고 소실되었던 수많은 기록과 사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었다. 미싱링크(missing link), 즉 잃어버린 고대사의 고리를 찾아준 게 바로 『사기』다.

마지막으로 열네 번째, ‘인간 사마천’이 있다.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고 발분하여 『사기』를 완성한 역사가 사마천의 기구한 삶과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접해보는 것도 『사기』를 읽는 것 못지않게 깊은 감동을 준다.